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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향의 선인과 성인, 천인
논의의 배경 환상향의 세계 안에서 선인(성인)과 천인은 분명히 개념적으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그 형질 역시 큰 차이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혹은 등에서는 천인과 선인을 상하의 관계로 묘사하며 그 둘을 명확히 구분지으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러한 상하관계는 의 묘사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에서는 천인을 이렇게 정의한다. “속세에 완전히 이별을 고하고 윤회전생의 고리에서도 벗어나 영원히 천계에서 사는 자들이다.” “천인은 수행을 쌓은 선인이 불로불사가 되어 산 채로 천계에 간 천인과, 사후 성불하여 천계에 간 천인이 있다.” 반면 에서 정의하는 선인의 형질은 이러하다. “수행을 쌓아 초인적인 능력을 익힌 인간, 하지만 완벽하게 욕망을 버린 것은 아니라 속세에서는 떨어져 있어도 환상향 안에 사는 자들이다..
2024.02.21 -
Beat of Arche
♬1박 계절의 첫 번째 박자 그 여름날의 땅에서, 이름 없는 음악가의 명이 다했다. 일평생 무명이었던 그녀는 죽음 역시 무명이어서, 그 땅의 누구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시대에게 외면받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독한 죽음이 쇠털같이 많은 그 땅에서, 그녀의 죽음은 지역신문에서 한 줄을 차지할 만한 화젯거리도 되지 못했다. 비극마저 되지 못한 죽음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꿉꿉한 지하실 안에서 발견된 주검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쓸쓸했던 것이다…. 애도 받지 못한 쓸쓸함이 동정을 불러왔다. 음악의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찾아온 한 경찰에 눈에 보인 그녀의 송장은, 세상 어떤 미물의 사체보다도 덧없어 보였던 탓에 그의 마음에 측은함을 일게 했다. 동정은 늘 기만을 함양하지만, 결과적으로 ..
2023.04.25 -
요재지이비록
내 아비는 그 능력에 비해 심히 박복하였다. 무예로 성 안에 견줄 자가 없었지만 성년기에 낙마하여 장애를 얻었으며, 유달리 총명하여 공명의 환생이란 칭송을 받고도 전란 사이 가문이 황실의 미움을 산 탓에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본인도 제 팔자가 출세할 팔자는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내 과거 공부를 내던지고는 오랫동안 두문불출하고 말았다. 마을의 만민이 이를 동정─혹은 조롱─하여 그가 마치 평사(評事) 벼슬을 지내는 것처럼 무평사(武評事)라는 별명으로 부르니, 이는 금세 그의 이름 이상으로 유명해져 삼 년쯤 지나니 모두가 그의 이름을 ‘무평사’라 칭하였다. 다행히 무평사는 명망만큼은 하늘같이 높은 무씨 집안의 외자였던지라, 출세하지 못한 백면서생이었음에도 혼기를 놓치지 않고 적당히 이름 있는 집안의..
2023.03.20 -
백련은 티끌이 되어
천혜라 불리우는 장대비가 천지를 가득 메우고, 검은 구름에 태양은 가려져 대지가 일광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비를 즐기는 개구리 따위에게는 퍽 좋은 날씨였겠지만, 태양을 신앙해 태양에 예속된 더러움 가득한 속세가 반길 날씨는 아니였다. 성난 하늘 아래 성난 군중들이 모여 그들을 노하게 한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먹먹한 하늘에 먹먹해진 가슴을 마치 그녀를 탓으로 돌려 해소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광소하는 눈과 광기 어린 고함. 군중의 눈이 품은 ‘광’은 태양의 일광인가, 달의 광기인가. 태양을 품기엔 구름이 짙다. 그러나 달을 품기엔 그들은 불결했다. 어디서 기원했는지 모를 분노에 잠긴 이들은 여인에게 아낌없이 조소를 보냈다. 장대비를 반주 삼는 비난의 기악은 광상곡이 되어 여..
2023.03.14